교회소개 > 교회100년사



눈으로 보는 제이교회史①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이 이 땅의 작은 마을에 씨앗을 뿌렸고, 작은 불길은 큰 불을 일으켜 한국 교회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 왔다. 복음의 도도한 물결은 아름답게 꽃피고 열매를 맺어 마침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크고 많은 교회가 탄생되었다.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제이교회의 역사를 이 시점에서 회고하고 그 발자취를 살펴보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되고, 숨을 고르는 의미가 될 것이다.
제이교회 100년사를 바탕으로 지나온 걸음 걸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

오토바이를 탄 아담스(안의와) 목사(대구역앞)


첫 번째 이야기 - 달남(達南)교회의 창립

1912년 분립된 서편교회(일명 동신교회)초기모습
(달남교회또는 서문밖교회라 불렸으며 지금 제이교회전신이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대부흥 운동은 전국 각지의 부흥운동과 회개 운동으로 교세가 확장되었고, 1912년 장로교 통계에 따르면 목사 128명, 장로225명, 세례교인 총수 53,008명으로 그 위세가 발전하였다 .
1900년 이후 대구 읍 교회(현 제일교회)는 급속히 성장하여 대구 읍내에 사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멀리 경산, 칠곡, 가창 등 동서남북에서 교인들이 출석하여 대구 읍 교회는 분립 하기에 이른다.

1912년 설립된 달남(達南)교회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12년 대구 읍 교회 당회록에 의하면 본 교회 교인이 왕성하고 교회당이 협착하므로 본 지방 서편 신동 등지에 3백명되는 교회 한 곳을 세워 선교사회에 맡겨 처리하기로 동의 가결하다.
1912년 경상노회록에 의하면 홍승한씨가 대구 읍 교회에서 서편 전동, 후동, 신동 달성 등지에 삼백여명이 되는 교회 당갈음을 보고하매 회중이 보고대로 갈음하여 허락주기로 동의 가결 한다. 대구 서편에도 딴 당회를 허락하기로 회중이 동의 가결하다. 신정교회 창립 25주년 연혁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주후 일천 팔백 십사 년 원두우선교사가 복음을 가지고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하야 안의와 목사가 부산으로부터 일천 팔백 구십 오년 십 이월에 대구 남문 안에 주소를 정하고 전도를 시작하야 대구에 교회를 세운지 십 오년만에 교세가 왕성함으로 대구서부에 교회를 설립함이 합당하야 일천 구백 십이 년 오월 이십 일에 세례교인 사십 명과 원입교인 오십 명이 남셩뎡 교회로써 교회를 분립하니 신정교회의 창립이로다.

한편, 초창기 대구지역 선교사로 봉사한 H.M.Bruen(부해리)선교사의 자료집<한국에서 40년>에 의하면 대구제이교회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The Second Church(Su Pyun or Su Moon, which means West Gate) was founded on May 20,1912. Mr.Bruen was the moderator of the session and Dr. Fletcher was in charge of the church. Chang Chair Soon was the first pastor.
- 서편 또는 서문이란 뜻을 가진 대구제이교회는 1912년 5월 20일에 창립되었다. Bruen 은 당회장이었고, Fletcher는 담당자이었으며 정재순은 첫 번째 목사이다. -
서편교회 초창기는 달남, 서편, 서문이란 이름을 사용하였고, 일제시대는 신정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일부 교인들은 1912년에서 1913년 기간 중 동산병원 대기실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을 때에는 동산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를 좋아했다. 달남교회 또는 서편교회 그리고 동산교회라 불리던 교회 명칭이 일제시대에는 신정(신정)교회라 불렀고, 1947년 신정교회에서 서문(西門)교회라 개칭하였다.
1959년 장로교단의 분열로 인하여 서문교회는 1961년 분립되어 제이교회(통합)와 서문교회(합동)으로 나누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 - 예배당의 신축

1928년 예배당 봉헌 기념식 사진(1928년)


1912년 설립된 신정교회는 예배당이 없어 90여명의 교인이 모여서 처음에는 제중원 남녀 대합실을 빌려서 7개월간 집회하는 중 교인수가 150여명이 되었고, 1912년 11월에 계성학교 기도실을 빌려서 8개월을 경과하니 교인수가 200명으로 급성장하였다.
최초의 예배당 신축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1913년 3월 20일에 신정 810번지에 예배당을 건축하니 건평 50여 평에 목제함석집 20 간이오 기지 300평은 미순회 기부를 받고 건축비 1,050전으로 준공하야 8월에 헌당식을 거행하니 이 성전이 신정교회 최초의 예배당이다.
1913년 첫 번째 성전에 이어 1928년 두 번째 성전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1922년 4월 2일 예배당 신축기성회를 조직하니 회장 리경욱, 서기 김태술, 회계 정경로, 진기찬, 리명긔, 감사 김영서, 리상진, 졍상호 연보한 회원이 232인이며 작정한 금액이 2,692원 90전이더라 . 1926년 7월 12일부터 본 예배당을 신축키 위하여 새벽기도회를 시작하고 동년 9월 9일에 목사 사택은 횡뎡으로 이사하고 예배는 보기로 하고 구 건물을 헐어 버리고 공사를 시작, 1928년 5월 6일 두 번째 성전인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세 번째 이야기 - 초창기 교역자와 전도 활동

신정교회 초창기(1912년~1944년)는 일제 강점기간으로 이 시기에 신정교회에서 시무한 교역자는 설립자 안의와(James E.Adams)목사 4년, 정재순 목사 14년, 염봉남 목사가 13년이었다. 신정교회 당회는 1914년 7월 12일 조직되었고 당시 당회장 안의와 목사, 서기 권종태(=권희윤)장로, 회원은 정재순, 서자명 장로였다.
안의와(James E. Adams)목사는 초대 당회장으로 시무하다가 1916년 계성중학교장 취임으로 사임하였고, 정재순 목사는 제2대와 제4대 당회장으로 14년간 시무하다가 1922년 안동읍교회, 1946년 고령읍 교회 부임으로 사임하였으며, 염봉남 목사는 제3대 당회장으로 13년간 시무하다가 1936년 별세하였다.
안의와 목사는 1897년부터 1923년까지 대구 선교부에서 헌신한 선교사로서 서자명 조사(助事)와 함께 경상북도 경산, 영천, 청도 등 남부지방에서 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장남 안두화(Edward Adams)목사는 계명대학교를 설립하여 2대 선교사로서 헌신 봉사하였으며 1922년 전 재산을 기부하여 아담스 복음 전도기금을 설립, 경북지역 선교에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1935년 경북노회는 약전골목에 위치한 (구)제일교회 구내에 기념비를 세워 선교사 안의와 목사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대구 초창기 목회자
(좌로부터 박영조 이만집 김기원 정재순목사)
1920년 6월 신정교회 교회학교 학생일동(두번째줄 왼쪽에서 4번째가 김정오장로)
1920년대 대구지역 사경회(부흥회) 광경